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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좋아하고 쉽게 즐겨먹을 수 있는 도넛. 향기로운 커피와 함께 먹으면 금상첨화죠. ^^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도넛의 모양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 이유 한번쯤은 궁금해 하셨을테지요. 지금 아무렇지 않게 너무나 당연한 듯 보고 사용하고 먹고 있는 많은 것들이 그 엣날 작은 발명 혹은 작은 발견에서 시작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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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의  도넛구멍 발명

도넛은 밀가루로 만든 과자다. 이 과자는 우유와 달걀, 버터를 주로 사용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부드럽고 맛도 좋다. 따라서 오늘날 어린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사랑을 받고 있다. 도넛이 이처럼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 비단 맛 때문만 일까? 아니다. 독특한 모양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도넛이란 말을 들으면, 가운데 구멍이 뚫린 모양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그러면 이 구멍은 누가 맨 먼저 뚫었을까?

미국의 한슨 크로켓 그레고리가 바로 도넛에 구멍을 낸 주인공이다.

1832년에 태어난 그는 미국 동북부 메인 주 연안에서 선장으로 일했다.
어린 시절 그레고리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는 프라이드 케이크를 몹시 좋아했다. 그런데 가끔 케이크 가운데가 익지 않는 채로 식탁에 올려지곤 했다. 그는 이것이 무척 아쉬웠고, 그 원인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째서 가운데 부분이 익지 않는 것일까? 고루 익힐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러던 1847년의 어느 날이었다.

그레고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케이크 앞에서 골똘히 생각하다가, 케이크의 가운데 부분을 포크로 뚫어 구멍을 내어보았다. 그러자 익지 않은 부분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 이었다. 그는 뛸 듯이 기뻤다.

'바로 이거야! 이렇게 하면 프라이트 케이크를 완전히 익힐 수 있을 거야.'

이것이 도넛에 구멍을 낸 시초였다.

그런데 이렇게 착안된 구멍 뚫린 도넛의 요리법이 어떻게 유행하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또 하나의 숨겨진 사실이 있다.

1847년 그레고리의 선박이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고전하고 있었다.

배를 지키기 위해 그레고리는 뱃머리에서 잠시도 떠날 수 없었다. 요리사는 그레고리를 위해 도넛을 가져다주었다.

바로 그때였다.

바로 옆에 산처럼 큰 파도가 밀려왔다. 순간 그는 도넛을 타륜의 손잡이 가운데 하나에 끼워 넣고 핸들을 두 손으로 단단히 붙잡았다. 파도가 물러간 다음, 손잡이에서 도넛을 꺼냈다. 그런데 도넛은 부스러지지도 않았고, 바닷물에 젖지도 않았다.

이 무용담 같은 이야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뱃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선장들은 요리사에게 타륜의 손잡이에 끼워 넣을 수 있는 도넛을 만들도록 주문했다.
그로부터 25 년 후 메인 주 토마스톤의 존 F. 브론델은 처음으로 도넛에 구멍을 뚫는 기계를 발명해, 특허를 받았다.

물론 이 기계로 도넛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글  : 왕연중 (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영동대학교 발명특허학과 겸임교수)
                  (이메일 :
wangyj39@dreamwiz.com 전화 : 011-890-8578)
그림: 김민재 (만 화 가,  홈페이지  //http :
www.coolmorning.net/)
* 발명지식인 ‘발명사전’의 저자도 왕연중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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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초우

무서운 전염병을 막아준 페니실린을 우연하게 발견한 것처럼 발명도 우연찮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사용되는 유리는 일반 유리가 아니죠. 보통의 유리라면 사고가 났을때 더 큰 상처를 입히겠지만, 잘 깨지지 않고 깨져도 조각이 나지 않기때문에 큰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안전유리가 자동차에는 사용됩니다. 그 안전유리의 발명 역시 우연찮게 이루어졌다는거 아시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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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투스의 안전유리 발명

인류의 역사상 20세기처럼 많은 변화와 발전을 가져온 시대는 없었다. 그중에서도 발명은 인류의 의식주에 엄청난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안전유리 역시 20세기에 들어가면서 빠른 발전을 거듭하였는데, 그 발전의 이면에는 실로 믿기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안전유리를 발명한 프랑스의 과학자 에두아르 베네딕투스의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것. 베네딕투스는 틈만 나면 거리를 거닐며 사색에 잠기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네딕투스는 우연히 자동차 충돌사고를 목격했다.
'꽝!'하는 순간 두 자동차의 창유리는 박살이 나고, 날카로운 유리조각에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렸다.
'저럴 수가!'
순간 베네딕투스는 몇 년 전에 자신이 연구했던 셀룰로이드에 관한 실험을 생각했다.
‘그래. 셀룰로이드를 이용하면 유리의 위험성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거야!’
베네딕투스는 큰 기대를 가지고 어떤 충격에도 박살나지 않는 연구를 시작했다.
그러나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베네딕투스는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15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고양이가 베네딕투스의 실험실을 돌아다니다 선반 위의 플라스크를 땅에 떨어뜨렸다. 고양이를 내쫓은 베네딕투스는 깨진 플라스크를 치우려다 말고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산산조각이 났어야 할 플라스크가 풀로 붙여놓은 것처럼 금만 간 채 모양이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이럴 수가!'
 베네딕투스는 놀란 가슴을 달래며 조심스럽게 플라스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15년 전에 붙여 두었던 라벨을 보고서야, 그 플라스크 속에 셀룰로이드 용액을 담아두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셀룰로이드 용액이 이 속에서 말라 얇은 막을 만든 것이고, 그래서 유리조각이 막에 달라 붙여 박살이 나지 않은 것이고...'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베네딕투스는 안전유리에 대한 연구를 다시 시작했다. 연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베네딕투스가 발명한 안전유리는 두 장의 유리판 사이에 투명 셀룰로이드 막 한 개를 넣어 만든 것이고, '트리플렉스'라고 이름 지어졌다.
이때가 1909년. 베네딕투스는 이 트리플렉스 제조법으로 특허를 받았고 부와 명예를 거머쥐게 되었다. 그리고 트리플렉스는 자동차 창유리는 물론 여러 용도로 쓰이며, 유리의 위험성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글 : 왕연중(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장) : E-mail wangyj39@dreamwiz.com
그림 : 김민재(만화가) : 홈페이지 http://www.coolmorni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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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위, 플레이스테이션 등 TV를 이용한 게임기가 요새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실감나는 사운드와 그래픽에 이제는 움직이면서 게임을 즐기기까지.ㅎ 이런 게임기를 발명한건 뜻밖에도 할아버지라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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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십대의 어린 발명가를 볼 수 있었던 반면, 육칠십대 노령의 발명가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지금 즐기고 있는 비디오 게임의 창시자도 67세의 노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랄프 H. 베어이다. 그는 뉴햄프셔주 나슈아시에 자리 잡은 방위산업 회사인 샌덜즈사에 다니는 기술자였다.

“이봐! 자네 집에서는 텔레비젼을 어디에 쓰나?”

“보는 거죠. 뭐, 달리 쓸 데가 있겠어요? 텔레비젼은 텔레비젼일 뿐이잖아요.”

베어의 엉뚱한 질문에 동료 직원은 당황해 하며 말끝을 흐렸다.

‘미국의 가정에는 집집마다 텔레비젼이 있다. 심지어 한 집에 텔레비젼이 두세 대씩 있는 곳도 있다. 이렇게 많은 텔레비젼들로 뭔가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을까?’

베어는 항상 이 문제를 골똘하게 생각했다.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심지어는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에도 베어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뭔가가 꼭 있을 거야. 600만 대가 넘는 텔레비젼. 이것을 잘 이용한다면 멋진 사업을 할 수 있어.’

이렇게 몇 달이 흐른 뒤였다. 뉴욕의 어느 정류장에서 베어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에는 자신의 손자뻘 되는 아이들이 뛰어 다니고 있었다. 그는 그 아이들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무릎을 탁 쳤다.

“맞아! 게임을 하는 거야. 텔레비젼으로 하는 게임.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텔레비젼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어할거야. 빨리 시작해야지!”

베어는 기쁨에 넘쳐 격앙된 어조로 외쳤다.

뉴햄프셔로 돌아온 베어는 틈틈이 텔레비젼 앞에 앉아서 게임을 만드는 데 열중하였다.

그의 작업실에서는 늦은 밤에도 항상 불빛이 새어나왔다. 이렇게 열심히 일한 덕에 1967년에는 패드보올 게임과 하키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5년 후인 1972년 4월 25일, 그는 특허청으로부터 특허품으로 등록되었다는 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그해 봄에 마그나복스사를 통해 ‘오디세이’라는 가정용 비디오 게임을 보급했고, 약 10만 개가 팔렸다. 베어가 상당한 부자가 된 것은 당연하였다.

 

글   : 왕연중(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 E-mail wangyj39@dreamwiz.com
그림 : 김민재(만화가) : 홈페이지 http://www.coolmorning.net/

왕연중의 발명사전 또는 이 원고의 저작권은 왕연중에게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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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것들로 부터 한번 더 바꿔 생각하면 기가막힌 발명이 나오기도 하지요.^^ 우리가 누구가 흔히 볼 수 있는 자동 판매기의 발명 또한 남들과 달리 한번 더 생각하였기에 탄생할 수 있었던 발명품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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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부터 지구촌의 귀염둥이 가게 주인으로 등장한 자동판매기의 뿌리는 사실 1백 50년이나 된다.


발명사의 기록에 따르면 첫 번째 발명가는 영국의 덴함.

당시 영국에서는 동전을 넣으면 움직이는 놀이기구가 유행하고 있었다. 당시의 이 놀이기구는 지금의 전자오락기구만큼이나 인기가 있었다.

이 놀이기구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호기심뿐이었다.


그러나 덴함의 경우는 달랐다.

‘동전을 넣으면 일정한 시간동안 움직인다. 어떤 원리일까?’

덴함의 의문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놀이기구 제작회사를 찾은 덴함은 너무나도 간단한 원리에 허탈한 생각까지 들었다.

동전의 무게로 작동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기구’라는 기술자의 설명을 믿고 싶지가 않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덴함은 기발한 착상을 떠올렸다. 동전의 무게로 물건이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자동판매기를 생각한 것이다.


1857년 덴함은 1페니를 넣으면 그것이 슈트에 전해져서 떨어지고, 이때 용수철의 끝이 벗겨져서 우표가 나오는 자동판매기를 발명하게 되었다. 당연히 특허로 출원하여 등록을 받았다.


덴함이 영국 발명계의 화제의 인물로 등장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바로 실용화되지는 못했다. 우선 투입된 동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감지기가 아직 발명되지 않았고, 당시만 해도 자동판매기가 절실히 필요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1880년대 공중전화기의 등장과 함께 개선이 이루어지고, 1900년대 들어 진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발명가 덴함은 가고 없지만, 지구촌 구석구석에 자리한 자동판매기마다 덴함의 영혼은 살아 숨쉬고 있다.

글 : 왕연중(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 소장) : E-mail wangyj@dreamwiz.com
그림 : 김민재(만화가) : 홈페이지 http://www.coolmorning.net/

출처 : 특허청 뉴스 발명이야기(http://blog.korea.kr/main/blog.do?blogId=400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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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초우

1백년 동안 전세계 병마개 시장을 꽉 움켜쥐고 있는 ‘왕관 병뚜껑’은 농부인 윌리엄페인타의 끈질긴 집념과 페인타부인의 순간적 기지가 조화를 이룬 부부합작품이다.
1890년 시카고 근교의 어느 평화로운 농촌마을. 한쌍의 잉꼬처럼 금실이 좋았던 페인타부부는 가난했지만 무척 행복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페인타부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농장에 나가 해가 진뒤에야 다정하게 귀가했다. 비지땀을 쏟아내는 한낮의 열기로 인해 내내 심한 갈증을 느꼈던 페인타는 집안에 들어서자 마자 소다수병을 따 단숨에 들이켰다.


그런데 갑자기 극심한 복통이 왔다.

병마개가 엉성해 소다수가 변질 되었던 것이다.

근처에 병원도 약국도 없어 사흘 동안 배를 싸안고 죽을 고생을 한 페인타는 이를 계기로 직접 완벽한 병뚜껑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그날 이후 페인타는 틈틈이 시카고에 나가 닥치는대로 각종 병마개를 모았다.
처음엔 영문을 몰라 ‘남편이 앓고난 뒤 좀 이상해 진 것이 아닌가’ 생각, 남몰래 고민하던 부인도 남편의 뜻을 알고 난 이후부터는 팔을 걷어 붙이
고 병마개 수집에 동참했다.
그러기를 5년, 페인타의 보관함은 자그마치 6백여종, 3천여개의 병마개로 가득찼다.

방대한 자료가 갖추어지자 본격적인 연구에 발동을 걸었다. 1년 동안 각종 병마개의 특성을 꼼꼼히 분석한 결과 일단 ‘나사식 병마개’를 발명하는데 성공했다. 이전의 병마개보다는 한결 나았으나 소다수나 맥주처럼 가스압력을 크게 받는 음료에는 마찬가지로 속수무책이었다.

크게 실망한 페인타는 이내 허탈감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재치넘치는 아내가 있었다.


“여보, 뭘 그리 고민하세요. 간단한 방법이 있지 않아요. 병뚜껑을 모자처럼 씌운 다음 그 둘레를 왕관모양으로 꽉 찍어누르면 되잖아요.”


이 말을 듣는 순간 페인타는 부인의 손목을 덥썩 잡았다.


“그래 맞아, 그런데 왜 이제서야 말하는거요.”


“사실은 저도 방금 떠오른 생각인걸요.”


페인타는 즉시 행동에 옮겼다.

부인의 생각은 한치의 어김도 없었다.

완벽에 가까운 변질방지기능과 뛰어난 영리성, 게다가 병마개를 힘차게 따는 순간 느끼는 통쾌감까지 보너스로 갖춘 이 발명품은 나오자마자 미국은 너무 좁다는듯이 전세계로 쭉쭉 뻗어나갔다.  

                           글 : 왕연중(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장) : E-mail wangyj39@dreamwiz.com

                           그림 : 김민재(만화가) : 홈페이지 http://www.coolmorni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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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편제도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우표가 영국에서 처음 발명되기 전에는 모든 나라가 다 원시적인 방법으로 우편물을 주고 받았다.
즉, 춘향전에서 방자가 이도령에게 편지를 들고 가는 것처럼 사람에 의존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지나치게 오랜 시간의 소요와 분실사고 등 많은 불편함이 잇따르자 사람들은 우체국을 설립하고, 그곳을 통해 우편물을 전달하는 데에 이르렀다.
그러나 당시에는 우체국을 이용한 전달도 우편물을 전달해 주고 난 후에야 비로소 돈을 현금으로 주고받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다가 영국에서 우편물에 붙이는 세계 최초의 우표인 ‘페니 블랙’이 발행되어 우편요금을 대신할 수 있게 하였다.
이같은 우표를 고안하여 현대 우편제도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은 영국의 로랜드힐이라는 사람이었다.
1839년의 어느 날, 힐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어느 집에서 벌어진 말다툼을 엿듣게 되었다.
“여기까지 이미 가지고 왔는데 받지 않으신다고 하면 전들 어떻게 합니까?”
“그 편지를 받고 안받고는 제 마음이잖아요.저는 아무튼 그 비싼 요금을 내면서까지 그 편지를 받고 싶지는 않아요.”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집의 대문앞에서 우연히 이를 듣
고있던 힐은 이런 광경을 그동안 적잖게 보아온 터여서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만 하더라도 우편요금은 모두 착불이었으므로 수취인이 배달료를 그때 그때 지불하게 되어 있었고, 그에 따른 언쟁이 자주 일어났다.
힐은 그날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배달료가 수취인을 부담스럽게 한다면 보내는 사람이 미리 배달료를 내면 되지지 않을까? 용건이 있는 사람이 돈을 내는 거니까 그게 더 좋을거야.”
여기서 힌트를 얻게 된 힐은 어렵지 않게 우표를 고안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해서 우표를 처음 발명하게된 힐은 영국정부로 부터 많은 상금을 받아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었다.

글 : 왕연중(한국발명문화교육연구소장) : E-mail wangyj39@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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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사용하는 컴퓨터. 이제 컴퓨터는 우리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있죠. 바로 키보드와 마우스 입니다.
다른 주변기기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좋아지는 성능과 더불어 외모도 많이 바뀌게 되느네요. 이 마우스만은 발명 당시 그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 마우스 어떻게 발명됬는지 살펴볼까요

◀ 최초의 마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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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번호 US3541541 1970년 11월17일 미국 스텐퍼드 연구소(SRI) 더글라스 엥겔바트 연구원이 발명한 ‘디스플레이 시스템용 X-Y 위치 표시기’의 특허를 취득했다. 이 ‘표시기’의 첫 발명은 이보다 7년 앞서 1963년 이미 이루어 졌다.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연구하던 엥겔바트씨는 나무 상자에 작은바 퀴2개를 집어넣어 위아래와 좌우 방향의 움직임을 감지하게 했다. 상자 윗면에는 소형버튼을 달아 모니터에 표시를 하거나 프로그램을 구동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엥겔바트씨는 컴퓨터 이용자가 한 손에 이 기계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키보드를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IBM이 ‘개인용 컴퓨터(pc)'를 출시했을 때가 18년 뒤인 1981년이니 그의 예지는 놀랍기만 하다. 엥겔바트 연구팀은 기계를 ‘버그(bug)'라고 불렀다가 먼 훗날 본체와 기계를 연결하는 선이 꼬리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마우스‘라는 별명을 붙였다. 마우스는 연구실에서 시제품으로 운명이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1984년 마우스를 보조 입력장치로 사용한 애플사의 매킨토시 PC가 출시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도스(DOS) 운영체제의 막을 내리고 1995년 ‘윈도95’시대를 열면서 마우스는 필수품이 됐다.

특히 1991년 월드와이드웹(www)의 탄생 이후 인터넷이 널리 사용되면서 마우스는 핵심 주변 기기로 등극했다. 그러나 정작 ‘마우스의 아버지’는 한푼의 특허권 사용료도 받지 못했다. 마우스 특허는 1987년 기간이 만료됐는데, pc와 마우스 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맺어지기도 전인데다가 이후에 개발된 마우스들이 ‘오리시널 특허’를 침해하지 않는 새로운 매커니즘을 채택했기 때문이었다. 엥겔바트씨는 한 인터뷰에서 “마우스 특허가 쓸모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특허를 얻은 몇 년 뒤 연구소가 애플사에 약 4만달러를 받고 사용허가를 내 줬다는 것을 알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마우스 발명 외에 한번의 클릭으로 다른 정보로 이동하는 ‘하이퍼텍스트’ 기술을 개발했고, 인터넷의 전신인 미 국방부 산하 국가방위네트워크 '아르파넷(ARPANET)'의 구축도 주도했다. 올해 81세인 엥겔바트씨는 1988년 딸과 함께 컨설팅 연구소 ‘부트스트랩’을 차렸다. 사무실은 마우스 제조업체로 잘 알려진 ‘로지텍’이 무상임대 형식으로 마련해 줬다. 
 
                                                                       출처 : 동아 일보(책갈피 속의 오늘) 2006년 11월 17일

참조 : 발명교육센터 (http://iec.kipo.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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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책상위 어디든지 간편하게 메모를 하기도 하고, 다이어리 안이나 노트, 책, 냉장고, 등등 포스트잇을 활용한 TV CF까지 나올정도니 그 활용성이 정말 어머어마하죠. ^^ 하지만, 이런 포스트 잇도 자칫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없어질뻔 했습니다. 포스티잇 발명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한번 읽어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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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잇. 노랑색의 조그마한 접착성 종이 쪽지가 바로 이것으로, 보고서의 가장 자리를 장식하기도 하고, 때로는 전화 수화기에도 붙어 있고, 책상의 결재함에서 불쑥 튀어나와 잠깐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 시켜 주기도 하는 히트상품이다. 그런데 이 발명품이 처음 발명될 당시만 해도 쓰임새가 없어 겨우 특허출원을 마친 상태에서 방치되어 버렸다.


발명가는 ‘3M’이라 불리는 미네소타 마이닝 엔드 매뉴팩처링사 중앙연구소 연구원이었던 스펜서 실버. 실버는 당시 접착성 중합제의 신소재로 불리우는 ‘모노머’를 구입하여 새로운 접착제를 연구하고 있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던 어느 날, 실버는 ‘모노머를 다량으로 반응 혼합물 속에 넣으면 어떻게 될까’하는 엉뚱한 생각과 함께 실험에 착수했다. 엉뚱한 생각인 만큼 결과에는 별다른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러나 신기한 결과가 나타났다. 접착성이라기보다는 응집성 정도의 신기한 접착제가 탄생한 것이다.

“접착성이 약해 붙었다가도 떨어져 버리는 이것을 어느 짝에 씁니까?” 3M사는 특허출원만 하고 생산은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74년. 3M사의 제품사업부에서 일하던 아서 프라이는 교회 합창단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도중 새로운 쓰임새를 떠올렸다. 다음에 부를 찬송가의 페이지에 ‘포스트 잇’ 같은 쪽지를 붙여 두면 편리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프라이의 제안을 받아들여 3M사는 ‘포스트 잇’의 생산을 시작했다.

결과는 실패. 소비자의 반응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보다 못해 중역인 제프리 니콜스와 조셉 테미가 나섰다. 이들은 “홍보로는 안 된다. 직접 써 보게 해야 한다.”는 전략으로 영업을 지휘했다. 성공이었다. 한번 사용한 사람은 마약중독자처럼 말려 들었고, ‘포스트 잇’은 일약 히트상품이 되어 전세계에서 불티나게 팔려 나갔던 것이다.

 
글: 왕연중 <한국발명진흥회>
그림: 김민재 <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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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심심할때 오징어 보다 더 많이 애용되는 풍선껌, 씹는 재미뿐만 아니라 부는 재미까지 갖춘 이 재미난 장난감(?)은 그 역사를 보면 기원전 2세기 마야문명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껌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끈건 군인들때문이라고 합니다. 전쟁이 한창이었던 2차대전 군인들에 의해 전세계로 퍼져나간 풍선껌..아마도 전쟁으로 인한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주로 씹히지 않았나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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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껌 아시죠? 껌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하고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기호식품이다. 껌의 역사는 매우 오래전부터 씹었다는 설이 있다. 발상지는 멕시코. AD 2세기경 마야문명에서부터 유래되었다. 인간은 먹고 마시는것 이외에도 항상 무언가를 씹고 자하는 충동이 있으며 이러한 습관은 기원전 부터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기록상으로는 AD 2세기경 멕시코의 마야족 동굴 벽화에 무언가를 씹는 모습이 있으며 이후 마야족의 멸망으로 일부 아메리칸 인디언들에 의해 나무의 수액으로 껌과 비슷한 것을 만드는 방법이 전해져 왔다. 오늘날의 츄잉껌과 같은 제품은 1880년대 미국의 토마스 아담스에 의해 상품화되었는데, 멕시코에서 자라나는 사포딜라 나무의 라텍스인 치클을 뜨거운 물속에 넣어 부드럽게한 다음 손으로 동글게 만들어서 약국에 판매한 것이 츄잉껌의 원조가 되었다.

츄잉껌이 공업적으로 본격 생산된 것은 1890년대 초반 윌리엄 위그리가 회사를 설립하여 미국 전 역에 판매하면서 부터인데 그의 판매 전략은 이익의 대부분을 광고에 투자하여 소비자 들로부터 '위그리 츄잉껌' 을 인식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판매전략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위그리는 전 세계 껌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풍선껌은 1928년 회계사인 월터 다이머에 의해 최초로 개발되었는데 분홍색 색소를 첨가한 풍선껌으로 그 당시 대단한 인기를 모아 껌의 대중화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전 츄잉껌과 풍선껌은 오직 미국에서 생산되었으며 미군들에 의해 유럽및 세계 각국에 전파되어 대중화 되었다. 2차 대전중에는 군인 한 사람당 일 년에 3천개의 껌을 씹은 것으로 집계되었고, 오늘날도 미군의 야전 식량과 전투 식량으로 쓰이며 군인의 껌 소비량이 일반인의 다섯 배에 달한다.

이처럼 군인들에게 사랑 받은 껌은 한국전쟁 무렵 연합군이 들어오면서 우리나라에도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해태 제과에서 처음으로 풍선껌을 만들어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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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어김없이 각 가정에서는 면도기로 수염을 다듬는 남성들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면도를 도와주는 이 면도기는 누가 발명한걸 까요? ^^
면도기 회사로 유명한 다국적 기업인 질레트. 회사 이름이자 곧 안전면도기 방명자인 질레트 라는 평범한 세일즈맨이 발명했다고 합니다. 생활속에 작은 불편을 놓치지 않고 집어내는 능력도 대단하지만, 발빠른 특허출원을 비롯한 사업수완도 대단한 사람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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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수염을 깍는 면도기 아시죠?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으로 지구촌 곳곳을 누비는 질레트회사도 작은 발명인 안전면도기로부터 탄생했다. 100여년 동안 전세계 남성들의 필수품으로 인기를 독점해 온 안전면도기의 발명가는 평범한 세일즈맨 출신의 질레트이다. 이야기는 1895년 어느 여름 아침에서 시작된다.보스턴에 출장간 질레트는 과중한 업무에 지쳐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 거래처와의 약속시간은 다가오는데 시간은 촉박해 서둘러 면도를 하다가 얼굴을 몇 군데나 베고 말았다. 몹시 화가 난 것은 당연했다
 
 
질레트는 그날 밤부터 살갗을 베지 않는 면도 기를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매일 시간에 쫓기다보니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틈틈이 짬을 내 1년이 넘도록 예리한 칼날과 씨름했지만 연구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질레트는 이발소에 들렀다가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발사가 가위를 빗에 눌러대고 머리털을 자르는 것이었다. 빗 사이로 삐져나온 머리털만 잘라내므로 전혀 피부를 다칠 염려가 없었다. 실로 당연하고 평범한 원리였으나 그는 여기서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그렇지! 빗에 얇은 칼날을 붙이면 되겠구나.' 일단 아이디어를 잡았으나 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서둘러 특허출원을 마친 그는 친구인 니커슨의 도움으로 공장을 세우고 생산에 들어갔다. 대히트였다.
 
한 달도 채 못 돼 1년 내내 완전 가동해도 모자랄 물량의 주문이 쇄도했다. 공장설립 첫해의 순이익이 자그마치 당시 돈으로 500만 달러를 넘어섰으니 안전면도기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년 후 세계 20여 개국에 수출됐고, 10년 후에는 50여 개국에 현지 공장이 세워졌다. 지금은 도시의 샐러리맨부터 아프리카 오지의 추장에 이르기까지 털난(?) 남성이면 누구나 사용하는 안전면도기다. 하찮은 실수를 위대한 발명으로 끌어올린 질레트는 명성과 재력을 세계에 떨쳤고, 그의 이름을 딴 질레트회사는 지금도 면도기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출처 : 왕연중의 발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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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을 막아주는 자물쇠 아시죠? '한 도둑, 열이 못 막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도둑이 예고하고 드나드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 나타날지도 모르니, 바로 이런 어려움을 두고 생겨난 속담일 것이다. 예로부터 도둑은 있었고, 이 도둑으로부터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이 자물쇠이다. 이 자물쇠의 역사는 매우 길다. 장롱과 대문에 설치했던 것을 원조로 하여 그 동안 꾸준히 발전해 왔다. 동양은 동양대로, 서양은 서양대로 지역특성에 맞게 만들어져 도둑예방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들 자물쇠는 너무 엉성하여 제 구실을 다하지 못했다. 비로소 제 구실을 할 수 있는 자물쇠를 발명한 사람은 새뮤얼, 직업이 형사인 새뮤얼의 취미는 발명이었다.
 
 
쉬는 날이면 닥치는 대로 이것저것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이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그는 형사가 된 후 조사과로 발령을 받으면서부터는 자물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또, 자물쇠를 끄르고 침입해 범행을 저질렀구먼!' 도둑들이 하나같이 자물쇠를 끄른 후 범행한 것이 확인되자, 새뮤얼은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모든 자물쇠를 사모아 살펴보았다. 하나같이 연약하고 빈약하여, 손쉽게 부수고 열 수 있었다. 심지어는 제 열쇠가 아니어도 쉽게 열리기까지 했다. '이것도 자물쇠라고 만들었나? 도대체 자물쇠의 기능이 뭔데 이렇게 엉망인 거야. 자물쇠는 장식으로 달아놓은 거야 뭐야?' 새뮤얼은 몹시 분통이 터졌다.
 
'자물쇠가 제 기능을 다해 준다면 상당량의 범죄가 줄어들 텐데, 자물쇠가 너무나 엉성하니 너도나도 쉽게 도둑질할 생각을 갖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그래, 범죄는 예방이 최고야. 그러자면 우선 견고하고 정밀한 자물쇠가 필요해. 한번 해보자. 내가 직접 자물쇠를 만드는 거야.' 새뮤얼은 단단히 결심을 하고는 자물쇠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어야 하는 형사라는 직업 때문에 마음놓고 연구에 몰두할 수가 없었다. 이왕 하기로 마음먹은 것, 꼭 해내고야 만다. 좀더 강한 철을 재료로 하여, 제 열쇠가 아니면 절대로 열리지 않는 정밀한 자물쇠를 기필코 만들어내고야 말 것이다.'그는 형사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연구에 임했다. 불과 3개월 후, 새뮤얼은 자신이 생각했던 튼튼한 자물쇠를 만들어 특허출원까지 마쳤다. 그러나 사방팔방으로 자본가를 찾아 사업화를 부탁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큰마음을 먹고 뉴욕의 번화가에 책상을 놓고 투자가를 모집했다. 이 결심에 신이 도왔는지 그곳에 한 뚱뚱한 사람이 찾아왔다.그의 이름은 세갈이었다. 세갈은 그의 자본을 중심으로 새뮤얼의 발명을 사업화하였다. 세갈자물쇠주식회사는 순식간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부상했는데, 사장에는 새뮤얼이, 부사장에는 세갈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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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이의『삼각팬티』

흡사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사람의 은밀한 부위를 살짝 가린 삼각팬티 아시죠? 과연 누구의 발명품일까? 주인공에 대해 유난히 말이 많으나 누가 뭐래도 맨 먼저 특허로 등록한 이는 일본의 사쿠라이 여사다. 그녀는 일명 마이크로 팬티를 불렸던 '삼각팬티' 꿰맨 곳이 줄어든 '유니크팬티', 스타킹을 겸한 '유아용 아톰팬티' 등 팬티시리즈만으로 돈방석에 올라앉은 특이한 발명가이다. 언뜻 활동적인 젊은 디자이너를 떠올리기 쉽지만 어리광을 부리는 손자들에게 둘러싸인 50대 중반의 할머니. 젊은 시절 의류 소매상을 한 것이 옷과 관련된 인연의 전부다. 삼각팬티는 할머니의 지극한 손자사랑의 선물. 나이가 들어 집에서 손자들을 돌보던 그녀는 어느 여름날 아이들이 무릎까지 닿을 정도로 긴 속옷에 몹시 불편한 것을 발견한다.
 
 
당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반바지2004-02-02에 가까운 속옷밖에 없었기 때문에 겉옷을 입기에도 불편했으며 특히 여름에는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속옷의 구실은 단지 가리는 것이다. 쓸데없는 부분까지 길다랗게 만들 이유가 없다'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고 명료했다. 데드론 이라는 천으로 만든 헌 자루를 싹둑 잘라 다리가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을 내고 봉제한 것이 바로 삼각팬티. 가볍고 편리한데다 산뜻하기가 그만이었다. 너도나도 삼각팬티로 갈아입는 팬티교체 신드롬을 타고 이것이 대 히트한 것은 당연했다. 때는 1952년. 발명이라는 것도 별거 아니군. 내친 김에 몇 가지 더해볼까" 곧바로 나온 팬티시리즈 2탄이 유니크팬티.그때까지는 허리와 엉덩이 곡선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해 엉덩이부분에 옷감을 덧씌우곤 했다.
 
그녀는 이를 아예 생략한 것. 착용감도 뛰어났고 이어 꿰맨 곳이 터질 염려도 없었다. 이 또한 히트작. 때는 1954년. 이어 처음부터 통으로 짠 천을 인용해 만든 타이스팬티, 삼각팬티의 원리를 응용한 유아용 아톰팬티가 속속 발명했고, 이것들은 일본굴지의 의류업체인 도요레이온사에 의해 대량생산돼 전세계를 휩쓸었다. 그녀에게는 연간 30만엔의 로열티와 기술고문이란 직책이 주어졌다.
 
[출처 : 왕연중의 발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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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름이나 단추보다 편리한 지퍼 아시죠? 지금도 우리나라 고유의 옷인 한복의 저고리나 두루마기에는 길다란 옷고름을 달아서 예쁘고 맵시있게 매어 바람에 팔랑팔랑 날리는 모습으로 '한국의 멋'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옷고름은 옷감이 많이 들어 낭비인데다가 옷고름을 매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단추를 쓰게 되었다. 특히 월남 이상재(月南 李商在) 선생님은 물자 절약으로 나라 사랑하자고 외치면서 언제나 단추 달린 두루마기를 자랑삼아 입으셨다. 하지만, 단추를 여러 개 달아야할 양복 바지나 잠바 등은 옷을 만들 때 단추 구멍을 많이 만들고 거기에 꼭 맞게 단추를 달아야 하며, 옷을 입을 때나 벗을 때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아니라 단추가 잘 떨어지는 폐단이 있다. 이러한 불편과 낭비를 없애고 단숨에 옷을 입거나 벗을 수 있는 지퍼의 발명은 오늘날 모든 사람들의 환영을 받게 되었는데 누가 어떻게 발명 했을까?
 
 
1893년 미국의 시카고에서 살던 재드슨이 지퍼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슬라이드 파스너'라는 것을 처음 만들어 가죽 장화에 부착하여 신었다. 그리하여 장화의 단추걸이를 걸어 맞추어 신던 번거로움을 간단히 없애버렸다. 그러나 1913년에 스웨던의 센드버그 박사에 의하여 그것이 더욱 개량 되었고 마침내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미국이 이것을 군복에 부착하기 위해 대량으로 생산하게 되었다. '지퍼'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1926년에 소설가인 프랑코가 '그것을 연다' '그것을 닫는다'고 말을 한데에서 붙여졌다고 하며 1930년에 스케필레리라는 여자가 지퍼가 드레스에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에서 자기 까운의 목둘레에서 옷자락까지 지퍼를 장식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각종 옷에는 물론이고 '지갑, 핸드백, 가방'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물건에 지퍼를 부착하여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다. 특히, 지퍼가 달린 부츠는 신기도 편리하고 벗기도 쉬워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퍼에 대한 연구는 더욱 발전되어 한 쪽에서부터만 열기 시작하는 불편을 덜기 위해 최근에는 슬라이더 2개를 서로 마주 보게 부착한 지퍼가 생겨 좌우 어느 위치에서나 열고 닫기 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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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그무어의종이컵발명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격언은 동서고금의 진리. 엉뚱하고 작은 아이디어 상품이면서 세계적인 발명품으로 손꼽히는 종이컵도 필요가 낳은 발명품이다. 음료자판기 시대를 꽃피운 종이컵의 발명가는 미국사람 휴그무어. 캔사스 출신인 그는 1907년 하버드대에 입학할 때까지만해도 발명과는 무관한 평범한 학생이었다.

종이컵 발명을 결심한 것은 발명가인 형의 자동판매기 발명이 계기. 한 살 위인 형 로렌스루엘랜은 생수를 판매하는 자동판매기를 발명하여 이미 그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그러나 형이 발명한 생수자동판매기는 자기로 된 컵을 사용하고 있어서, 하루에도 몇 개의 컵이 깨지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이 때문에 형의 자동판매기는 날이 갈수록 그 인기가 하락했다. ‘그렇다면 깨지지 않는 종이컵을 만들면 되지않아!’ 휴그 무어의 머리는 하버드 대학생답게 팽팽 돌아갔다. 그러나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종이는 물에 젖으면 힘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물에 쉽게 젖지않는 태블릿 종이를 찾아내 는데 성공했고, 다음 단계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종이컵 발명에 성공한 휴그무어는 대학을 그만두고 생수공급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사람이 모이는 곳마다 형이 발명한 자동판매기를 설치하고, 컵은 자신이 발명한 종이컵을 사용했다. 그러나 생수 장사로는 회사 운영이 어려워 도산 위기에 몰렸다. 바로 그때 W.T. 그래함이라는 자본가가 20만달러를 지원하겠다며 종이컵 회사 설립을 제안해왔고, 휴그무어는 반갑게 받아들였다. 휴그무어의 종이컵은 광고 하나 없이도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종이컵 발명으로 큰 돈을 모은 휴그무어는 1920년에는 아이스크림을 담아 파는 종이용기까지 선보여 종이컵과 종이용기 발명에 관한 한 세계적인 발명가로 떠오를 수 있었다.

 

글 : 왕연중(한국발명진흥회 이사) : E-mail wangyj39@dreamwiz.com
그림 : 김민재(만화가) : 홈페이지 http://www.coolmorni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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